2020년도 2학기 학부 인문 아너스 프로그램 참여자 후기

2021-06-04l 조회수 857

* 이 글은 2021년 봄에 발행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교 소식지 제52호에 실려 있습니다. 

1. 

7월 왕정 부르주아의 공공보건 담론과 위험한 계급의 탄생: 빌레르메와 프레지에를 중심으로 - 서양사학과 정한솔
학교에 머무른 시간이 길어질수록 성장하기는커녕 내가 가려는 길이 맞는지,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인지 의문만 깊어지게 마련입니다. 친구들과 만나더라도 예전에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면, 이제는 간간히 미래에 대한 불안이 담긴 하릴없는 한숨이 섞이곤 합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양가적인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리고 내가 배우는 학문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새내기 때, 어느 술자리에서 삶과 인문학의 학부생 조교님께 당돌하게 질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교님께서는 인문학이 무슨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조교님은 잠시 맥주잔을 바라보시더니 대답했지요. 인문학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를 알려주는 학문이라고. 인문학을 배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5년도 넘게 지나 아너스 프로그램을 통해 졸업논문을 쓰면서, 거의 이백 년 전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생경한 언어로 남긴 책들과 씨름하는 제가 새삼스레 그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1840년에 프랑스인 두 명이 쓴 책들에 관해서 연구하는 게 무슨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직 인문학에 관해서는 부끄러울 정도로 얕은 앎밖에 갖추지 못했지만, 누군가 묻는다면 마땅히 답을 해야겠지요. 일단 탐구의 과정은 하나의 떨림입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시대에 살아갔던, 다른 언어로 생각하고 말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내 손에서 엮여 한 편의 논문으로 완성되는 과정은 연구자 개인에게도 떨리는 일이지만, 나아가 완전히 이질적인 타자와 함께-떨리는’, 즉 공명하는 일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이 느낌은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배울 때 처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느 여름날 밤 기숙사 건물 바깥을 서성이며 왠지 모르게 신이 났었지요. 내가 몽테스키외가 쓰던 언어를, 볼테르가 읊던 말을, 위고, 발자크, 졸라가 쓰던 글을 배우고 있다니, 마침내 그들의 방식대로 생각할 수 있다니!
물론 학문이 이러한 자기만족에 끝나서는 안 되겠지요. 인문학이 제게 남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앎과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 이제야 조교님의 말을 조금은 이해하겠군요. 인문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관해서 묻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까지 문제를 제기합니다. 요컨대 역사의 보건학에 관한 학문은 없지만 보건학사는 존재합니다. 철학의 과학에 대하여는 말하기 어렵지만 과학철학은 어엿한 학문입니다. 우리는 과학사, 외교사, 정치사, 사회사, 전쟁사, 보건학사, 법제사를 공부할 수 있고, 사회철학, 정치철학, 과학철학, 법철학, 언어철학에 대해서 말합니다. 인문학은, 감히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앎이며 그렇기에 언제나 바깥으로 탈주하는 메타-’의 학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앎의 궁극적 도달점은 우리의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인문학의 쓸모를 묻는다면 시원스럽게 답할 수 없습니다. 누가 우리 삶의 쓸모에 관하여 단언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너스 프로그램은 그 목적뿐만 아니라 과정을 통해서도 자유의 이념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일단 선발되고 나면 인문대학에서는 학업지원비만 지급할 뿐, 무엇을 연구할지, 어떠한 방법론을 사용할지, 어떤 책을 구입할지, 어떻게 논문을 구성할지, 누구에게 조언을 받을지 등 연구의 모든 부분은 오롯이 연구자에게 일임합니다. 그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 편히, 그리고 자유롭게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산출된 각양각색의 주제를 다룬 다채로운 글빛의 논문을 갖고 모여, 서로의 논문을 발표하고 또 비평하면서 앎의 지평을 넓혀나갑니다. 자그마한 조각들이 드넓은 벽면을 촘촘히 채워 모자이크를 만들어내듯, 일견 파편적인 우리의 논문들 역시 언젠가 진리라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는 어엿한 조각이 될 수 있으리라고 내심 기대해보는 이유입니다.
, 이제 제가 물었던 질문에 제가 답하면서 마무리 지어야겠군요. 저와는 다른 시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통해 저의 관점을, 그리고 제가 살아가는 세계의 외연을 조금이나마 더듬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질병을 구실로 타자를 비인간화했던 과정을 탐구하면서 우리는 어떠한가를 되물을 수 있었습니다. 앎이 어떻게 삶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이어져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고민은 영영 끝날 수 없음을 절감했습니다.

 2.  영화 <엑스 마키나><창세기>의 상호텍스트성: 롤랑 바르트의 S/Z를 중심으로 - 미학과 조연우
저는 미학과에 입학했을 때부터 영화와 영상예술에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영상이라는 매체가 어떤 특별한 장치와 연출기법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되고 수용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항상 흥미로웠습니다. 이와 관련된 공부를 하고자 인문대에서의 4년 동안 영화와 관련된 강의들을 다양하게 수강하였는데, 이 중 2학년 때 들었던 대중예술의 이해라는 수업에서 이번 아너스 프로그램에서 다루었던 롤랑 바르트라는 학자와 <엑스 마키나>라는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바르트의 이론을 매우 재미있게 공부했던 기억이 있어, 아너스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그때 해결하지 못했던 궁금증을 조금 더 채워보고자 영화 <엑스 마키나><창세기>의 상호텍스트성: 롤랑 바르트의 S/Z를 중심으로라는 연구 주제를 선택하였습니다.
세상의 어떤 텍스트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수많은 텍스트로부터 영향을 받아 구성됨을 의미하는 상호텍스트성은 기존에 존재하는 소설, 웹툰과 같은 작품들이 활발하게 각색 및 영화화되는 오늘날 대중문화의 경향 속에서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중요성에서 출발하여 상호텍스트성이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바르트의 상호텍스트적 독해 이론을 분석하고, 이를 현대 내러티브 영화에 직접 적용해보는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바르트의 저작들을 읽어보고, 그의 철학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바르트의 이론이 오늘날 비평의 영역에 어떤 시사점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습니다. 논문을 완성한 후에 참여했던 아너스 심포지엄 역시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토론 시간이 조금 부족하여 더 오래 의견을 나누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지만, 다양한 발표와 이에 대한 교수님들의 꼼꼼한 심사와 피드백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각자 진행한 연구에 대한 참여자 모두의 노력과 열정이 비대면으로도 생생하게 느껴져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해왔었다면, 인문대학에서는 보다 능동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을 찾는 것보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이야말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작업임을 깨달았습니다. 비슷한 질문과 호기심을 가진 훌륭한 학우들과 함께 교류하고 학습하며 성장했던 인문대에서의 학부 생활을 아너스 프로그램으로 보람차게 마칠 수 있어 행복했고, 다른 인문대 학생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